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이토 테츠야 (문단 편집) === 데뷔 전 === 도쿄도 아다치 구에서 나고 자란 도쿄 토박이로,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[[신일본 프로레슬링]] 팬이었으며,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축구부원으로 활동하였던 천상 스포츠맨이었다.[* 중학생 때 까지는 야구도 병행했는데, 중학교 재학 시절 학교 축구부와 야구부 양 팀 모두에서 주장을 맡았다.] 원래는 축구 선수 지망이었지만 중학교 3학년 때인 1997년 6월 5일, 친구 4명과 함께 신일본의 BEST OF THE SUPER Jr.IV 결승전 [[일본 무도관]] 흥행[* 메인 이벤트는 [[카네모토 코지]] vs 엘 사무라이였다.]을 보러 갔다가 본격적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러[* 가장 좋아하는 레슬러는 '''천재''' [[무토 케이지]]였고, 신일본 레슬링의 골수 팬이었기 때문에 다른 단체를 지망한 적 자체가 없다. 여담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흥행을 보러 갔다가 [[타나하시 히로시]]를 보고 열렬한 팬이 되면서 신일본이 내로라하는 천재 두 명에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.]를 지망하게 되었으며, 고교 졸업 후인 2000년부터 일찌감치 애니멀 하마구치 짐에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였으나 입단 테스트 응시 직전이던 2002년에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전방 [[십자인대]]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.[* 프로레슬러의 꿈을 포기해야 할 수준의 부상이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재활에 성공하였다. 그러나 2018년 NHK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때까지도 한달에 한번 정도 무릎에 찬 물을 빼야된다고 한다.] 이로 인해 2003년까지 통으로 날려먹은 후 2004년 [[타카다 노부히코]]의 타카다 도장에서 개최한 타카다 도장 서브미션 레슬링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는 유망함을 보이며 다시 신일본 입단 테스트를 노렸으나 [[벤치 프레스]] 도중 어깨를 다치며 또다시 시험 응시가 좌절되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재활에 성공하여 이듬해인 2005년 11월 3일에 열린 신일본 입문 공개 테스트에서 참가자들 중 '''유일한 합격자'''로 뽑혀 신일본 입단에 성공한다. || [youtube(oqs3-7pNr4Y)] || || 나이토 테츠야의 트라이아웃 및 데뷔 시합 영상[* 영상에 등장하는 다른 후보로 [[SANADA]] 및 [[YOSHI-HASHI]]도 확인할 수 있다. 썸네일의 4번이 같은 애니멀 하마구치 짐 출신의 YOSHI-HASHI, 그 왼편에 유독 앳되보이는 6번이 당시 '''만 17세'''이던 SANADA. 여담으로 이 트라이아웃에서 YOSHI-HASHI와 SANADA는 탈락했고, YOSHI-HASHI는 한 번 더 탈락한 뒤 세 번만에 합격, SANADA는 무토 케이지의 무토숙에 들어갔다가 [[전일본 프로레슬링]]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.] || > 저의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향한 마음,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향한 관심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. 나이토 테츠야, 잘 부탁드립니다!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